한국MBSR 연구소 20주년 행사 참석 후기
어제 서울교육대학교에서 진행된 MBSR 연구소 20주년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많은 이가 강연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오전은 존 카밧진 박사의 축하 강연 오후는 안희영 박사님이 진행하는 명상과 나눔 순이었습니다.
행사는 존 카밧진 박사의 축하 강연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0시부터 시작해 오전 내내 지속된 이 강의에서 박사는 고령임에도 꼿꼿한 모습이 전혀 흐트러짐 없었습니다. 그가 사는 곳이 밤늦은 시간임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웠습니다.
우리는 그의 삶에 무수한 감동의 순간이 있었음을 압니다. 그의 책을 읽은 이라면 누구나 그가 걸어온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압니다. 그의 나이를 아는 이라면 누구나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명상을 해왔는지 압니다. 즉 수행을 시작한 이후 흘러간 65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압니다. 시간이란 수많은 일이 일어났다는 의미에서, 혹은 했다는 의미에서 복합적입니다. 그러나 그의 강연은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했습니다. 단순함과 소박함, 그것 자체가 이미 수행이 아닐까요.
그는 우리 모두 이미 아는 것, 매 순간 깨어있음을 강조했지요. 우선 그는 명상은 절대 사치가 아님을 천명했습니다. 사치가 아니라는 그 말은 우리의 일상이요 삶이요 매순간 실천해야 할 필수이며, 더 나아가면 나답게 사는 방법이라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오프라 윈프리로부터 죽음 후의 삶에 대해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죽음 전의 삶에 대해 더 관심 있다고 답했으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대해 매순간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예로 그는 우리의 가슴을 들었습니다.(제가 슬그머니 미소지었던 것은 그가 한자를 거론했기 때문입니다. 서양으로 건너갈 때 자칫 잘못해서 마음이 이성으로만 해석되었다는 그 내용 말입니다.)
가슴으로 사는 삶은 생명이 맥동하는 심장으로 사는 삶이며,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삶과는 다릅니다. 그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때 우리가 보는 것은 '허상'이지 '내 삶'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다는 것은 지금 나를 둘러싼 삶의 풍경과, 심지어 내 발걸음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아마 이 지점에서 Non-Doing(무위)의 개념이 중요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은 저 먼 세상의 파동에 주의를 빼앗기는 행위라면, 발걸음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에게 충실한 Non-Doing의 실천일 테니까요. (두잉 낫씽은 몸은 가만히 있지만 머리는 분주한 상태로, 이와는 다르다고 정리해 봅니다.) (지금 모니터 앞을 날아다니는 모기를 알아차린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의 강연은 결국 삶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지요. 매일의 경이로움을 말해주었으니까요. 손자들과 시간 보내기가 그 예였습니다.
다만, 청중의 질문에 답하며 딱 한 번, 보다 넓은 세계, 즉 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스템과 마인드풀니스의 기여를 거론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파울라 라미레즈(Paula Ramirez)라는 여성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녀는 성폭력을 당한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박한 삶의 이야기에서 부터, 가장 고통 받는 이들을 돕는 사회적 실천까지를 아우르는 것, 그것이 바로 삶 자체가 중요함을 말해주는 마인드풀니스의 경이로움이었습니다.
한국MBSR 연구소 20주년 행사 참석 후기
어제 서울교육대학교에서 진행된 MBSR 연구소 20주년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많은 이가 강연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오전은 존 카밧진 박사의 축하 강연 오후는 안희영 박사님이 진행하는 명상과 나눔 순이었습니다.
행사는 존 카밧진 박사의 축하 강연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0시부터 시작해 오전 내내 지속된 이 강의에서 박사는 고령임에도 꼿꼿한 모습이 전혀 흐트러짐 없었습니다. 그가 사는 곳이 밤늦은 시간임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웠습니다.
우리는 그의 삶에 무수한 감동의 순간이 있었음을 압니다. 그의 책을 읽은 이라면 누구나 그가 걸어온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압니다. 그의 나이를 아는 이라면 누구나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명상을 해왔는지 압니다. 즉 수행을 시작한 이후 흘러간 65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압니다. 시간이란 수많은 일이 일어났다는 의미에서, 혹은 했다는 의미에서 복합적입니다. 그러나 그의 강연은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했습니다. 단순함과 소박함, 그것 자체가 이미 수행이 아닐까요.
그는 우리 모두 이미 아는 것, 매 순간 깨어있음을 강조했지요. 우선 그는 명상은 절대 사치가 아님을 천명했습니다. 사치가 아니라는 그 말은 우리의 일상이요 삶이요 매순간 실천해야 할 필수이며, 더 나아가면 나답게 사는 방법이라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오프라 윈프리로부터 죽음 후의 삶에 대해 말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죽음 전의 삶에 대해 더 관심 있다고 답했으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대해 매순간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 예로 그는 우리의 가슴을 들었습니다.(제가 슬그머니 미소지었던 것은 그가 한자를 거론했기 때문입니다. 서양으로 건너갈 때 자칫 잘못해서 마음이 이성으로만 해석되었다는 그 내용 말입니다.)
가슴으로 사는 삶은 생명이 맥동하는 심장으로 사는 삶이며,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삶과는 다릅니다. 그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때 우리가 보는 것은 '허상'이지 '내 삶'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다는 것은 지금 나를 둘러싼 삶의 풍경과, 심지어 내 발걸음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아마 이 지점에서 Non-Doing(무위)의 개념이 중요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은 저 먼 세상의 파동에 주의를 빼앗기는 행위라면, 발걸음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에게 충실한 Non-Doing의 실천일 테니까요. (두잉 낫씽은 몸은 가만히 있지만 머리는 분주한 상태로, 이와는 다르다고 정리해 봅니다.) (지금 모니터 앞을 날아다니는 모기를 알아차린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의 강연은 결국 삶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지요. 매일의 경이로움을 말해주었으니까요. 손자들과 시간 보내기가 그 예였습니다.
다만, 청중의 질문에 답하며 딱 한 번, 보다 넓은 세계, 즉 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스템과 마인드풀니스의 기여를 거론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파울라 라미레즈(Paula Ramirez)라는 여성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녀는 성폭력을 당한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이고 소박한 삶의 이야기에서 부터, 가장 고통 받는 이들을 돕는 사회적 실천까지를 아우르는 것, 그것이 바로 삶 자체가 중요함을 말해주는 마인드풀니스의 경이로움이었습니다.